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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이 앗아간 해방촌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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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7 20:24

 

지난 4월 30일 공동체를 위한 공간 ‘해방촌 이야기’가 문을 닫았다. / 빈집ㆍ자캐오 성공회 신부 제공


지난 4월 30일. 서울 해방촌에 있는 ‘해방촌 이야기’가 문을 닫았다. 해방촌 이야기는 주거공동체 ‘빈집’에서 마련한 마을 주민의 쉼터이자 대한성공회가 운영해온 나눔의 집이기도 하다. 해방촌 이야기 폐쇄로 해방촌을 지켜온 유일한 공동체 공간도 사라지게 됐다. 해방촌 이야기 철거는 주거 세입자와 임차상인이 생활 터전에서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심화된 결과다.

5년 전 <주간경향>(1013호)은 서울 해방촌을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대안공동체의 거점’이라고 묘사했다. 당시 해방촌은 토박이와 가난한 예술가,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뒤섞여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빈집’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주거공동체도 생겨났다. 빈집은 구성원이 분담금을 나눠 내고 함께 생활하는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다. 빈집이 활성화되면서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카페와 모임 공간이 문을 열었고 마을 화폐도 유통됐다. 해방촌은 지금도 대안공동체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취약계층에 치명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해방촌에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뿌리 내렸던 마을 공동체는 와해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빠른 속도로 해방촌 전체로 퍼지고 있다. 해방촌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당초 사람들은 저렴한 집값을 보고 해방촌에 모였다. 상가 임대료를 포함해 전·월세 등 해방촌의 주거비는 서울 중심지 가운데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서울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남은 몇 안되는 지역인 데다 고지대인 탓에 유동인구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후된 해방촌의 현실을 감안해 지난 2015년, 서울시는 해방촌을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했다.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은 ‘재생이 시급하지만 재생적 변화 가능성이 낮아 공공의 통합 지원이 필요한 지역’을 뜻한다. 이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해방촌 일대에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이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도시재생사업은 기존 지역자원을 활용한 리모델링 방식을 통한 개발사업이다. 철거를 전제로 한 뉴타운ㆍ재개발 사업과 결이 다르지만 ‘개발사업’이라는 본질은 같다. 로또에 비견되는 뉴타운 사업만큼은 아니지만 해방촌에서 진행되는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 역시 부동산시장에 호재로 작용했고 실제로 임대료 상승을 이끌었다.

해방촌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게 된 원인은 도시재생사업 때문만은 아니다. 해방촌의 ‘관광지화’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채질했다. ‘온갖 것들’이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해방촌의 매력은 2010년부터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이태원 경리단길 열풍이 건너편 해방촌으로 옮겨왔고, 연예인들이 하나둘 해방촌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중매체가 앞다퉈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맛집’을 소개하면서 해방촌은 완전히 ‘힙한(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동네’가 됐다.

관광객 증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부동산은 들썩였고 온 동네가 새 단장한 점포들로 공사판이 됐다.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묶었던 ‘저렴한 집값’이라는 ‘연결고리’도 끊어졌다. 해방촌의 한 부동산 중개업so 관계자는 “새로 들어온 건물주들이 세를 올려 받는다”며 “월 50만원 선에 거래되던 가게세가 150만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오르막길 양쪽에 있는 건물은 평당 3000만원 정도였는데 6개월 만에 평당 6000만원으로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시세를 전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취약계층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해방촌을 떠난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다. 새벽에 일찍 일을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해방촌은 중요한 거주지였다. 서울 중심에 위치해 교통편은 좋지만 주거환경이 낙후돼 월세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해방촌 내 신흥시장 안에는 한 달에 10만원만 내면 살 수 있는 방도 많았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된 2015년 즈음부터 월세가 2배 넘게 오르기 시작했고 이주노동자들의 이탈은 가속화됐다.




해방촌 신흥시장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관광객 몰리면서 ‘힙한 동네’로 변신

이주노동자들의 주거문제가 커지면서 지난 2016년 4월,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나눔의 집’이 해방촌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해방촌에 직접 들어와 생활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보금자리를 지킬 방안을 찾겠다는 취지였다. 나눔의 집은 빈집 공동체와 임대료를 함께 분담하는 방식으로 ‘해방촌 이야기’라는 공동체 공간을 2년 동안 운영해 왔다. 하지만 해방촌 이야기는 2년 만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한 달 임대료가 143만원에서 198만원으로 오르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캐오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 신부는 “우리가 해방촌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은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에 대해서 목소리 낼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해방촌 임대료는 더 오를 것이고 젠트리피케이션은 끝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해방촌에 문을 연 빈집 공동체의 공동주거 주택 ‘빈집’도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한때 8개에 달하는 주거공동체와 1개의 마을카페의 연합체였던 빈집은 현재 2개의 공간만 남은 상태다. 빈집 규모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임대료는 갈수록 오르고 있다. 당초 보증금에 월세 60만원 수준이었던 임대료는 현재 보증금에 월세 100만원으로 올랐다. 빈집 관계자는 “빈집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닌 ‘관광지 해방촌’에서 미래를 보고 있지 않다”며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고민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해방촌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도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016년 10월 해방촌에 문을 연 ‘둘셋’ 디자인 스튜디오의 디자이너 홍윤희씨는 입주 6개월 만에 쫓겨날 뻔한 경험을 했다. 새로 바뀐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70% 올리겠다고 통보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새 건물주는 이내 월세를 받던 계좌를 해지했고 연락을 끊었다. 임차인이 월세를 3개월 이상 연체하면 계약기간과 상관 없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을 악용하기 위해 연체를 유도한 것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도 새 건물주와 말을 맞췄다. ‘주변 시세에 맞춰 임대료를 올리는 게 맞다’, ‘너네만 말을 안 듣는다’며 임대료 인상을 강요했다. 건물주의 횡포는 홍씨가 건물주의 행태를 구청에 신고하고 내용증명을 넣는 등 법적대응을 시작하고 나서야 멈췄다. 홍씨는 “자칫 쫓겨나거나 큰 손해를 볼 뻔했다”며 “이제 곧 계약이 끝나는데 해방촌 임대료가 많이 올라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해방촌에 들어닥친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세탁소나 철물점, 미용실과 같은 점포가 문을 닫았다. 떠난 자리에는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상가들이 들어섰다. 생활편의시설이 사라지면서 불편함이 커진 주민들의 이탈이 빨라졌다. 주민들이 떠난 주택은 리모델링을 거쳐 상가로 활용된다. 관광객 특수로 커진 상가 수요를 주택 개조를 통해 채우는 셈이다. 대부분의 건물주는 임차인들에게 내부수리를 계약 조건으로 내건다. 건물주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은 낡은 건물을 고치고 임대료도 올려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슷한 분위기의 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과 예술가, 상인, 공동체가 빚어낸 해방촌의 독특한 개성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해방촌의 상징으로 불리는 신흥시장은 먹자골목으로 변하고 있다. 주거용을 개조한 시장 안 점포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쪽방 세입자들은 일찌감치 쫓겨났다. 쪽방 세입자뿐 아니다.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킨 시장 상인들도 잇따라 해방촌을 떠나고 있다. 신흥시장에서 44년 동안 정육점을 운영해 온 방춘만씨(70)도 내년이면 해방촌을 떠나야 한다. 건물주로부터 상가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방씨는 “상황이 바뀌었으니 내가 건물 주인이라도 비워달라고 할 것 같다”면서도 “40년 넘게 있던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흥시장 내 점포와 건물 매매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부터다. 6개월 만에 시장에서 살던 7가구가 집을 팔고 떠났다. 그 사이 시장 내 살림집 5곳도 상가로 바뀌었다. 집주인이 바뀌면서 임대료도 올라가고 있다. 전 주인이 한 달 60만원 받던 상가들도 주인이 바뀌고 나서 한 달 100만원 넘게 받고 있다. 20년 넘게 전세 3000만원 계약을 유지해 온 건어물 점포 자리는 최근 TV프로그램 <골목식당>을 촬영한 뒤 월세 170만원에 새 주인을 만나 계약이 이뤄졌다. 박일성 신흥시장 상인회 대표는 “새로 계약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임대료를 너무 많이 받는 게 문제”라며 “평당 6만원 정도로 계산해서 받는 게 정상인데 임대료를 너무 올리는 곳이 생겨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상생협약 물거품 된 신흥시장

쫓겨나는 시장 상인과 쪽방 세입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서울시와 신흥시장 내 건물ㆍ토지 소유주, 임차인은 지난 2016년 ‘신흥시장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현재 임대차 계약일로부터 6년간 임차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임대료 인상도 물가상승분 안에서 하겠다는 게 협약의 골자다. 사실상 임대료를 동결해서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상생협약은 일종의 서로 간의 약속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 더군다나 주인이 바뀐 경우 상생협약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생협약을 체결한 신흥시장 내 상가 임대료가 치솟고 있는 이유다.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용산구 관계자는 “시장 상인회 분들에게 상생협약을 지켜줄 것을 계속 당부하고 있다”면서도 “시에서 임차인과 임대인 간 실제 부동산 거래 계약을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해방촌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대두됐던 서울 서촌과 홍대 앞, 이태원 경리단 길 등의 전철을 밟고 있다. 사례에 따라 주거 세입자가 내쫓기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임차상인이 내쫓기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비자발적인 이주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자발적 이주’ 현상은 뜨는 동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미디어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원하는 건물주, 이를 부추기는 부동산 업자가 맞물려 빚어낸 결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낙후된 지역에 일률적인 개발의 잣대를 들이대고 사업을 추진하는 행태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꼽는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가난하고 더러운 동네에도 기존 생태계가 존재한다”며 “낙후된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장사를 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고 일방적인 개발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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