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 여주인이 '복면강도' 결심…벼랑 끝 자영업자 최후의 선택

  • LV 14 아들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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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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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자영업자 잇단 극단적 선택

고깃집 女주인 '복면강도', 검도관장 ‘일가족 참사’

지난해 4대 자영업 폐업률 88.1%로 역대 최대

"자영업자 ‘경제적 충격’ 완화해야"

충남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 먹자골목에 자리한 고깃집 여주인 박모(52)씨는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박씨는 경기불황으로 식당운영이 어려워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자신의 고깃집에서 500m 떨어진 농협을 털기로 한 것.

지난 10일 오전 9시 2분, 박씨는 타정기(공사용 전동 못총)로 무장(武裝)한 채 농협으로 들어섰다. 얼굴은 복면으로 완전히 가렸다. 박씨는 현금 2754만원을 빼앗아 준비한 차량으로 도주했지만, 결국 3시간여만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맥주 두 병을 마셨는데 빚 생각이 나서 홧김에 돈을 훔쳤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식당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이틀 뒤인 지난 12일 찾은 박씨 고깃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복운리 먹자골목 전체가 황량했다. 저녁 7시로 식사시간이었지만, 먹자골목 식당·맥줏집은 불이 꺼진 곳이 많았다. 교차로가 겹치는 목 좋은 가게마저 ‘임대’딱지가 나붙은 상태. 그나마 영업하는 가게에는 테이블 하나에 손님을 ‘겨우’ 모셨다. 그마저도 손님이 돌아가면 다시 가게가 휑뎅그렁 비었다. 노래방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래방 주인은 "아무도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 이 시간대 복운리 먹자골목은 근방의 철강·제철 공장 직원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한다. 그러나 건설, 자동차, 조선산업이 일제히 침체하면서 자영업자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근처 공장에서 함바식당을 하던 이모(61)씨 두 달 전 가게를 접었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공장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식당을 찾는 직원들도 극단적으로 줄었다"라고 말했다.

◇농협 복면강도는 고깃집 女주인…근처 자영업자 "우리도 죽기 직전"

빚에 쪼들리다 결국 은행강도에 나선 박씨 가게도 영업실적이 엉망이었다. 그 옆에서 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는 ‘경쟁업체’ 주인 김모(52)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명도 안 올 때가 있어요. 굴욕감이 들 정도로 장사가 안 됩니다. 마음대로 가게도 못 접어요. 연초부터 가게 내놨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빚 내고 또 빚 내서 빚을 메우기 바빠요. 여기 자영업자 다 그래요. 박씨가 잘못했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박씨 가게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지명옥(62)씨는 "죽기 직전이다. 같은 자리에서 7년 설렁탕집 했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지씨 가게의 테이블 22개는 모두 비어 있었다. 그는 "빚으로 음식재료를 댄다"고 했다.

 


◇은행 털고, 일 가족살해… 벼랑 끝 자영업자

당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자영업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고 있다. ‘옥천 일가족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충북 옥천군에서 검도관을 운영하던 오모(42)씨가 빚에 쪼들린 끝에 아내와 세 딸을 흉기로 살해한 것. 오씨 스스로도 손목, 배 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구급차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빚에 시달려 가족들을 살해하고 나도 죽으려 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검도관 수입이 줄어들자 아파트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를 끌어 쓴 것이 화근이었다. 빚은 7억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씨는 경찰조사에서 "빚을 감당할 수 없어 혼자 죽으려고 했는데, 남겨진 가족들이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북 포항·영주 새마을금고를 턴 은행강도들도 모두 자영업자였다. 지난달 7일 포항 새마을금고에 침입, 459만원을 훔친 김모(37)씨는 공사장 설비업종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지난달 16일 영주 새마을금고에서 4380만원을 훔친 강도 박모(36)씨는 포장마차 주인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포항 새마을금고 강도 피의자 김씨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웠다"고 했고, 영주 새마을금고 강도 피의자 박씨도 "1억원 정도의 빚을 메우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개인사업자 대출119’ 건수는 5789건, 금액은 4801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건수는 40%, 금액은 43.6% 증가한 것이다. 개인사업자 대출119란 시중은행의 대출 원금·이자를 갚기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벼랑 끝 자영업자’가 전년 대비 폭등했다는 얘기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 숙박, 도소매업 등 4대 자영업 폐업률은 88.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쪽에서 가게 10곳이 문 열면 다른 쪽에서 9곳이 간판을 내렸다는 뜻이다. 경기도 수원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5)씨 "하루 10시간씩 일해도 한 달에 180만원을 손에 쥘까 말까 한다. 편의점 업주들 중에는 ‘폐업’ 아니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2017년 기준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1.3%.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4번째에 해당하는 수치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들의 대출 의존도가 커지면서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범죄도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고,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도 "최저임금 인상·경기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이들이 받는 ‘경제적 충격’을 완화해줄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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