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애인이 생겼을 때

  • LV 7 태공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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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30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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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기혼 여성 독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당신 남편이 바람을 피워 아이를 낳았다면 남편의 정부에 대해 당산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은 “바람을 피운 남편이 당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면 헤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세 번째 질문은 “남편이 바람을 피워 낳은 아이를 당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이다.

프랑스에 가브리엘 엘레오노르 알렉산드린 멜레라는 긴 이름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소설가 에밀 졸라의 아내였다. 바로 이 세 가지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그녀가 취한 태도는 어떤 쪽이었을까?

1870년에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지 않자 졸라는 차츰 갑갑증을 느끼게 되었다. 문단에서 (목로주점)ㆍ(나나)ㆍ(제르미날) 등의 소설로 작가로서의 명성은 확실히 다졌지만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15년이 지나도 아내는 임신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도무지 사는 낙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터에 30세 연하의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1888년이었다. 결혼 18 년째가 되는 해로, 졸라는 그때 나이 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잔 로즈와 처음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출판사 편집부 직원이라는 설도 있고, 졸라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편지를 보낸 독자라는 설도 있고, 집에서 부리던 하녀였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졸라는 18세 처녀 로즈를 깊이 사랑하여 1889년에 딸을, 1891년에 아들을 낳았다. 졸라의 불륜은 당연히 프랑스 전역에 소문이 났고, 그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멜레는 한꺼번에 삼중고를 겪게 되었다. 자신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는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남편이 자기 몰래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불륜의 결과 두 아기가 태어난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그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통곡하고 싶은 일들이었지만 멜레는 의연히 이 사태에 대처한다. 우선 남편이 자신과 이혼하고 젊은 정부와 새살림을 차릴 마음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졸라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당신에게는 정말 죽을죄를 졌소,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결혼 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소. 몇 번의 실수로 아기까지 낳게 되었으나 당신과 이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멜레는 남편의 말을 진심이라고 믿기로 했다. 졸라가 그 무렵 문단에서 위기에 몰린 것도 이혼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위기의 이유에는 불륜 사실에 대한 세상의 손가락질도 있었지만 졸라이즘이라고 일컬어지던 자연주의 자체의 위기가 더 큰 이유였다. 인간을 실험실의 모르모트처럼 여겨 유전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명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현실 고발적인 졸라의 작품이 처음에는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1887년에 발표한 소설 (대지)는 아주 잔인하고 노골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졸라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래저래 위기에 몰린 졸라를 아내는 애써 두둔하였다.

“여보, 사람 눈도 많고 구설수도 많은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들어가 조용하게 삽시다.”

졸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짐을 챙겼다. 로즈와 두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내 앞에 자신은 죄인이었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위상도 땅에 떨어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붓을 꺾고 시골에 은거해 있으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신문을 보는 일과 아내의 허락 하에 양육비를 로즈에게 보내는 일 정도였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인고의 새월을 보낸다.

(신문에서 우연히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 사건 기사를 보고 의분에 차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발효한 뒤의 발자취는 생략한다. 그는 영국으로 망명까지 해야 했자만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당당히 다시 서게 된다.)

세월이 흘러 1902년 9월 28일이었다. 졸라 부부는 센 강변의 짖ㅂ에서 여름을 지내고 파리로 돌아왔다. 그날 밤 부부는 창문을 닫은 채 난로를 피우고 잠이 들었다. 일산화탄소는 졸라를 저승으로 데려갔지만 멜레는 며칠 되에 깨어났다. 남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멜레는 남편의 두 자식을 자신의 호적에 올린다. 자신에 대한 남편의 한결같은 신뢰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그것은 뼈를 깎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퍼왔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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